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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인문학] 우연이란 그 시적인 이끌림

상상을 해본다.

 

당신은 2년 만에 짝사랑한 상대를 재회할 예정이다.

 

그(녀)는 당신에게 학교 교문 앞에서 만나자 했다.

 

당신은 일찍 도착했다. 그(녀)가 도서관에 있다길래 학교 안에 들어가 그(녀)를 마중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절당한다. 문지기 아저씨는 당신이 이 학교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들여보낼 수 없다고 한다. 문 밖에서 기다리라 한다.

 

기다린다.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당신은 교문 너머 뚫어지게 바라본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진 탓인지 어렴풋한 실루엣만 보인다.

 

그(녀)가 아니다. 또 그(녀)가 아니다. 사람들이 당신 곁을 지나친다. 당신은 계속 기다린다. 

 

갑자기 가로수 등이 켜졌다. 그(녀)가 보인다. 그(녀)가 어둠을 뚫고 가로수 빛 아래로 나타난다.
그(녀)가 대문 밖으로 걸어 나온다.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나의 이어폰에는 어느새 그(녀)가 즐겨 듣던 바흐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게다가 그(녀)의 손에는 카프카의 책 <심판> 이 쥐어져 있다.

지금, 그(녀)가 내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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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우연은 빗발친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 그건 바로 '우연'이다. '우연'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우리는 우연을 해석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이 얽혀 있다면 그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훨씬 의미 있다 생각한다. 

 

방금 전 만남의 상황을 살펴보자.

 

가로수 등이 갑자기 켜지며 그(녀)가 가로수 빛 아래로 걸어온다. 사실 당신이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도 이와 비슷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장소는 학교 교내 식당이다. 당신은 창가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당신은 우연히 눈을 들자 그(녀)가 보였다. 그때 때마침 비 구름이 거치며 강한 햇살이 창가를 통해 쏟아졌다. 그(녀)가 햇살 쪽으로 걸어왔다. 눈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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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갑자기 흘러나온 클래식 음악은 어떠한가? 

 

당신은 서양음악사라는 수업에서 그(녀)가 바흐의 첼로곡에 대한 견해를 펼치는 모습을 기억한다.

 

이 사건으로 당신은 호감을 가졌던 그(녀)에게 더욱더 호감을 가지게 된 게기가 되었다. 바흐란 당신에게는 다른 세계의 삶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현시대 사람에게 소외받는 하지만 아름다운. 이것은 차별이다. 당신은 항상 타인과의 차별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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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손에 쥐어진 카프카의 <심판>은 어떠할까?

 

당신은 '심판'의 내용 중 대성당에서 신부가 주인공 K에게 들려주었던 우화가 떠오른다.

 

법의 문 앞에 문지기가 서있다. 시골사람이 문지기에게 법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 간청한다. 문지기는 일생동안 거절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시골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지자 문지기는 시골사람에게 말한다, 사실 이 문은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당신은 방금 전 문지기에게 거절당한 기억이 났다, 그리고 바로 잇따라 자신의 처지가 시골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당신은 그(녀)를 기다려왔다. 이제는 2년간 짝사랑의 끝을 내야겠다 결심한다.

 

그(녀)가 당신에게 식당을 예약했다 한다. 그 식당은 2년 전 마지막으로 그(녀)와 함께 갔던 곳이었다. 모든 우연들이 합쳐 당신에게 다가선다.

당신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신은 확신한다. 그(녀)는 당신의 운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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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들은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이 우연들은 겹치고 겹쳐 당신에게 다가왔고, 당신은 이 우연들이 일종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어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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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우연의 사건들은 흔하다 할 수 있다. 단지 그 상황에 마침 그(녀)가 있었을 뿐. 이 모든 사건이 그(녀)가 아닌 그저 이웃집 아저씨가 대상이라 생각해보자. 이 또한 엄청난 우연이지만 이러한 우연들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 당신에게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이것들을 포착하는 것, 그것은 당신이 그(녀)를 향한 사랑이다. 당신의 시적 감각은 일깨워졌고 누구보다 예민해졌다. 당신은 앞으로도 무심코 햇살이 창밖에서 쏟아질 때, 가로수 등이 켜질 무렵, 그 순간순간마다 감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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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소설에서는 수많은 우연들이 내포되어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살펴보자.

 

돈키호테의 시작과 끝은 매우 유사성을 띄운다.

시작은 돈키호테가 기사가 되고자 모험을 떠난다.

끝은 돈키호테의 모험이 끝나고 산초의 모험이 시작된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살펴보자.

 

소설의 시작은 술을 마시며 시작한다, 거인이 태어나자마자 "마셔라!"라고 외친다.

소설의 끝은 결혼을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답을 찾으러 헤매고, 그 끝내 답이 들어있는 성배를 찾자, 성배가 준 답은 "마셔라!"였다. 술을 마시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살펴보자.

 

안나와 브론스키는 역에서 사람이 치여 죽었던 장소에서 만난다.

안나는 소설의 끝에서 열차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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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연, 이러한 대칭은 대단히 소설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의 삶 또한 소설적이다.

 

삶이 적혀진다. 아름다움이라는 방식으로 써내려간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아름다움에 의해 행동한다. 삶의 의미는 어찌보면 아름다움을 쫓는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러한 우연을 포착하고 아름다움을 쫓는 것에 비난할 수 없다. 

 

비난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연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향한 등돌림일 것이다. 

 

바로 시적인 이끌림에 거부하는 것이다.